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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다니면 정말 술 마시면 안 돼요?”, “명절에 조상님께 절하는 것도 죄가 되나요?”


이 질문은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가져봤을 법한 궁금증이자, 이제 막 신앙생활을 시작한 분들이나 심지어 오래 교회를 다닌 분들까지도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워하는 주제입니다. 누군가는 “절대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시대가 변했다”며 괜찮다고 하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죠.

오늘은 기독교인의 삶에서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 딜레마, ‘음주’와 ‘절’의 문제에 대해 단순히 ‘된다/안된다’의 이분법적 결론을 넘어, 그 근거는 무엇인지, 왜 그런 문화가 생겨났는지 핵심만 짚어 상세하게 파헤쳐 보겠습니다.

1. ‘음주’ 문제: 성경은 술을 죄라고 말하는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성경은 ‘술 마시는 행위’ 자체를 죄라고 명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 여러 곳에서 포도주는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인 의미로 등장합니다.

  •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 예수님은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장)
  • 건강을 위한 권유: 사도 바울은 위장이 약한 제자 디모데에게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권면했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 23절)
  • 성찬식: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에서 포도주를 자신의 피의 상징으로 사용하셨고, 오늘날 전 세계 교회는 이를 기념하며 성찬식을 거행합니다.

그렇다면 왜 한국 교회에서는 술을 금기시하는 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았을까요?

성경이 ‘술 마시는 것’은 죄라고 하지 않지만, ‘술에 취하는 것’은 명백한 죄라고 반복해서 경고하기 때문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에베소서 5장 18절)

성경은 술에 취해 판단력이 흐려지고,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며, 방탕한 삶으로 이어지는 것을 엄격하게 경계합니다.

여기에 한국의 특수한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더해졌습니다.

  1. 초기 선교사들의 영향: 구한말 한국에 복음을 전하러 온 서양 선교사들, 특히 미국 선교사들은 당시 미국 사회를 휩쓸었던 ‘금주 운동(Temperance movement)’의 영향을 많이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술로 인해 발생하는 수많은 사회 문제와 가정 파괴를 목격했기에, 아예 술을 멀리하는 ‘금주’를 신앙인의 거룩한 삶의 중요한 덕목으로 가르쳤습니다.
  2. ‘덕’을 세우는 문제: 기독교에는 ‘덕(徳)을 세운다’는 중요한 개념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허용되는 일이라도, 그것이 믿음이 연약한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거나 교회의 거룩한 이미지에 해를 끼친다면 스스로 절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술에 관대한 문화 속에서 살던 한국 사회에 기독교가 뿌리내리면서, 술 취함으로 인한 폐해와 구별되는 삶을 보여주기 위해 ‘금주’는 기독교인의 정체성과도 같은 상징이 된 것입니다.

결론 (음주): 성경은 술 마시는 행위가 아닌 ‘술에 취하는 것’을 죄로 규정합니다. 하지만 한국 교회의 역사적 배경과 ‘덕’을 세우기 위한 문화 속에서 ‘금주’가 강력한 전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따라서 교단이나 개교회 방침에 따라 금주를 강조하는 곳이 많으며, 개인의 신앙 양심에 따라 절제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절’ 문제: 단순한 예의 표현인가, 우상숭배인가?

‘절’ 문제는 ‘음주’ 문제보다 훨씬 더 명확하고 단호한 신학적 원칙이 적용됩니다. 이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문화’의 영역이 아닌, **’신앙의 본질’**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조상님께 감사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절하는 게 뭐가 문제냐”고 생각합니다. 물론 조상을 공경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성경도 강조하는 중요한 가치입니다.

문제는 ‘절’이라는 행위에 담긴 종교적 의미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가장 핵심적인 제1계명과 제2계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출애굽기 20장 3-5절)

기독교에서 ‘경배(Worship)’의 대상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그런데 전통적인 제사에서 지방(紙榜)이나 사진 앞에 차려진 제사상에 ‘절’을 하는 행위는,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을 신적인 존재로 여기고 복을 구하는 ‘경배’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기독교의 관점에서 명백한 **’우상숭배’**에 해당합니다.

즉, 기독교인이 제사 때 절을 하지 않는 것은 조상을 무시하거나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경배의 대상을 오직 하나님 한 분으로 모시겠다’**는 신앙고백에 따른 행동입니다.

기독교적 대안, ‘추도 예배’

이러한 이유로 기독교에서는 제사를 드리는 대신 **’추도 예배(또는 추모 예배)’**라는 대안적인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 의미: 고인을 추모하고, 그분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남은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예배입니다.
  • 방식: 제사상 대신 고인이 좋아하시던 음식이나 꽃, 사진을 놓고 가족들이 함께 모여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읽고, 고인에 대한 좋은 기억을 나눕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족과 가정을 위해 다 함께 기도합니다.
  • 차이점: 경배의 대상이 ‘조상의 영혼’이 아닌 ‘하나님’이라는 점이 가장 큰 차이입니다. 조상은 공경과 추모의 대상이지, 경배와 기도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신앙을 지키는 것입니다.

결론 (절): 어른께 존경을 표하는 일반적인 세배나 인사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사상 앞에서 하는 ‘절’은 종교적 ‘경배’ 행위로 간주되므로,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 원리(우상숭배 금지)에 따라 금지됩니다. 기독교인들은 그 대안으로 ‘추도 예배’를 통해 고인을 기리고 가족 간의 사랑을 나눕니다.

이처럼 기독교의 ‘음주’와 ‘절’에 대한 입장은 단순히 맹목적인 금지가 아니라, 성경적 가르침과 역사적, 신학적 배경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 막연했던 궁금증이 조금이나마 해소되고,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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